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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이후 매년 MWC를 참관해 온 경험에 비추어 보면, 한동안 MWC는 스마트폰과 다양한 디바이스 제조사들이 주목을 받는 행사였습니다. 새로운 단말기와 기술이 관람객의 관심을 끌었고 전시장은 시각적으로도 매우 화려했습니다.
그러나 2026년 MWC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었습니다. 화려한 디바이스 중심의 전시보다 통신 산업 자체의 변화와 미래 방향에 대한 논의가 행사 전반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통신사 최고경영자들의 기조연설과 패널 토론, 그리고 주요 전시 부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메시지는 모두 통신 산업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시각적인 볼거리는 예전에 비해 다소 줄어든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MWC가 본래 지향해 온 통신 산업 중심 행사로서의 정체성이 다시 분명해졌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번 행사에서 드러난 흐름을 종합해 보면 통신 산업이 직면한 변화는 크게 네 가지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존 네트워크 제공 중심 역할을 넘어서는 통신사의 사업 다각화입니다.
통신 산업은 전통적으로 대규모 선투자가 필요한 산업입니다. 네트워크 구축과 운영에는 막대한 자본 투자가 요구되며 이러한 투자는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통해 회수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시장 환경은 이러한 구조를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소비자 통신 시장은 이미 성숙 단계에 진입했고 네트워크 품질과 서비스 성능 역시 대부분의 시장에서 높은 수준으로 평준화되었습니다. 소비자들은 통신사를 선택할 때 기능 차별화보다는 가격과 안정성, 서비스 완성도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경쟁 환경 역시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기존 통신사 간 경쟁뿐 아니라 클라우드와 데이터 기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위성 기반 사업자들도 연결 시장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하는 것은 통신사에게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MWC 전시장에서도 많은 통신사들이 전통적인 네트워크 서비스보다 AI 기반 서비스, 산업별 디지털 솔루션, 프라이빗 네트워크, 엣지 컴퓨팅과 같은 새로운 사업 모델을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했습니다. 일부 기업은 제조, 스마트시티, 물류 등 특정 산업을 위한 B2B 디지털 플랫폼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기조연설과 패널 토론에서도 네트워크 제공 서비스를 넘어선다는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통신사가 플랫폼형 서비스와 디지털 솔루션 사업으로 확장하려는 전략적 방향을 보여주었습니다.
두 번째는 AI 기반 네트워크 진화입니다.
데이터 트래픽 증가와 AI 서비스 확산은 네트워크 기술과 운영 방식에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네트워크 규모와 복잡성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기존 방식으로는 효율적인 운영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AI 기반 네트워크 자동화가 중요한 기술 방향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MWC 전시장에도 자율 네트워크(Autonomous Network)와 AI 기반 네트워크 운영과 같은 개념들이 주요 키워드로 등장했습니다.
여러 네트워크 장비 기업과 통신사들은 스스로 최적화되고 문제를 자동으로 복구하는 네트워크 운영 모델을 소개하며 AI가 네트워크 운영의 핵심 기술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위성 통신과 비지상 네트워크 기술 역시 중요한 흐름으로 등장했습니다. 일부 전시에서는 스마트폰이 위성과 직접 연결되는 기술을 시연하며 지상 네트워크와 위성 네트워크를 결합한 새로운 연결 모델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세 번째는 디지털 주권에 대한 관심 확대입니다.
AI와 데이터가 경제와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디지털 인프라의 전략적 의미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AI 모델의 학습과 운영, 데이터 처리와 저장이 산업 경쟁력과 직결되면서 데이터와 인프라를 누가 통제하는가라는 문제는 점점 중요한 정책 이슈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심화된 기술 경쟁과 지정학적 긴장 역시 이러한 논의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클라우드와 AI 인프라의 상당 부분이 글로벌 기술 기업에 의해 운영되는 구조는 많은 국가에서 전략적 리스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MWC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여러 세션과 전시에서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유럽 통신사들의 기조연설과 패널 토론에서는 클라우드 의존도와 데이터 주권 문제가 중요한 주제로 언급되었습니다.
전시장에서도 데이터 주권과 자국 중심 디지털 인프라를 강조하는 부스를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일부 통신사들은 국가 또는 지역 단위의 AI 인프라 구축과 데이터 플랫폼을 소개하며 통신사가 디지털 인프라 구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네 번째는 사이버 보안의 중요성 확대입니다.
디지털 인프라가 산업과 사회 전반의 핵심 기반이 되면서 사이버 보안의 중요성도 빠르게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AI 기술의 발전은 공격과 방어 방식 모두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AI를 활용한 최근 관심사, 인간관계까지 학습한 초개인화 피싱 공격, 다크웹 등을 실시간 분석하여 타겟을 스스로 식별하는 자동화 침투, 시각, 청각을 모두 장악한 정교한 사회공학 기법이 등장하면서 기존 보안 체계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네트워크, AI 플랫폼이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보안 역시 개별 시스템이 아니라 전체 인프라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문제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MWC 현장에서도 보안은 핵심 주제 중 하나였습니다. 여러 세션에서는 제로 트러스트 보안, 신원 기반 보안, AI 기반 보안 기술이 반복적으로 언급되었습니다.
전시장에서도 네트워크 장비 기업과 보안 기업들은 네트워크 보안과 기업 보안을 통합하는 솔루션을 강조했습니다. 일부 통신사들은 자체 보안 플랫폼이나 보안 서비스 사업 모델을 소개하며 새로운 성장 기회를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MWC에서 확인된 네 가지 흐름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통신사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어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낼 것인가입니다. 사업 다각화 전략, 디지털 인프라 구축, 보안 역량 강화, AI 기반 네트워크 운영은 단순한 기술 도입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전략과 조직, 운영 모델의 변화가 함께 요구되고 있습니다.
MWC 2026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기술 트렌드가 아니라 통신 산업의 구조적 전환입니다. 앞으로의 경쟁은 기술을 누가 먼저 도입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이를 실제 비즈니스로 구현하고 확장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